보내심을 받은 자 (The One Who was 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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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9-26 13:28 조회1,186회 댓글0건본문
보내심을 받은 자(요한복음 9:1-12)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도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37을 모르면 결국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가슴에 자리를 잡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은 사람들과만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도 말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모르면 근본적으로 통하지 않고, 237을 모르면 결국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에서 출발하여 237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 인생도, 사업도, 학업도 그리스도에 근본을 두고, 237에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야 응답이 지속되고, 세상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생이 여기에 있습니다. 237은 내 인생의 이유이며, 내 사업의 이유 이고, 내 공부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내 생각은 나를 넘어야 하고, 가정을 넘어야 하고, 교회를 넘고 지역을 넘어 237에까지 가야 합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성경의 중요 인물과 렘넌트7명을 보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237 나라(세계복음화)이십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큰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보내심을 받은 자
1) 오늘 본문은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어떤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이 즉시로 질문을 드렸고, 주님은 이에 대하여 누구의 죄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즉시 복음의 답을 주셨습니다.
2) 그리고 침으로 진흙을 이기어 이 사람의 눈에 바르신 후에 실로암이란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고, 그는 멀쩡한 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리새인들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분명한 증인이 되는 장면을 9장 전체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오늘 이 놀라운 기적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메시지는 ‘나는 보내심을 받은 자’ 라는 것입니다. 실로암의 뜻이 그렇습니다. 침을 이겨서 진흙을 바르게 하신 것은 단지 그를 실로암이라는 못으로 보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습니다.
4) 예수님의 침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쓰신 흙이기 때문에 그 흙에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다른 연못에 가서 씻었다면 낫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기를 원하신 것은 이 사람을 통하여 당신이 보내심을 받은 자란 것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5)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서 7번 목욕하고 나은 것과 꼭 같은 원리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자기 나라의 강이 요단강 보다 훨씬 크고, 맑고, 좋다고 하였지만 그가 그 강에서 목욕을 하였다면 낫지 않았을 것입니다.
6) 그 강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깨끗해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강이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옆에 아무리 깨끗하고 좋은 연못이 있었어도 거기서는 아무리 씻어도 효과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하나님의 뜻이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우리가 확인할 것은 ‘오직 예수’입니다. ‘오직 복음, 오직 말씀’입니다.
7) 그래서 이 사람의 문제가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계획은 우리의 모든 문제에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일어서고 앉는 것을 알고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신다고 했습니다(시139:2). 우리의 머리털의 갯수를 다 세고 계신다면 말 다한 것 아닙니까!(마10:30)
8) 하나님의 계획을 벗어나는 일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언약으로 잡아야 하고, 믿어야 하고, 그대로 도전해야 합니다. 문제가 오면 누구나 불안합니다. 그러나 불안한 중에도 계속 언약 고백하고, 기도하고, 사탄 결박하고, 권세 선포하는 전쟁을 지속해야 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항상 우리와 더 함께 하신 것을 인정 하실 것입니다.
9) 그래서 잘 안 될 때 더 중요한 응답이 있다는 메시지를 많이 듣지 않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의 Control 안에 있습니다. 믿고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2. 증인
1) 이 사람이 아주 멋진 증인이 되었습니다. 분명한 증거가 있으니까요. 우리도 이런 확실 하고, 분명한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3절 이후를 읽어보면 이 사람이 분명하고, 선명한 증인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특별히 요9: 32-33절을 보면 아주 분명한 고백이 나옵니다. ‘창세 이후로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3) 이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분명하고,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응답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으면 이렇게 됩니다. 그냥 무슨 방법으로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언약으로 잡으므로 응답을 받아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줄을 사실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4) 그러면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증인이 됩니다. 그냥 기도 많이 하여 응답을 받으면 분명히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원하시지, 기도를 전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기를 원하시지, 그리스도에 기도를 섞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시지도 않으십니다.
5) 오직 그리스도, 그러므로 기도해라. 아니 24시 해라. 이런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섞어버리면 안 됩니다. 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하고, 그리스도에는 아무것도 섞여서는 안 됩니다.
6) 그리고 증인될 때뿐 아니라 개인이 누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독립적으로 고백하고, 그 언약을 잡고 기도에 들어가야 하는 것 입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응답만 되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은 종교이고,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오직 그리스도 하나 아래에 모든 것이 다 들어와야 합니다.
7) 물론 그리스도를 누리는 시간 따로, 그것을 끝내고 난 뒤에 이제 기도하는 시간 – 이렇게 율법적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도 기도이고, 기도하는 시간도 기도입니다. 단지 하나님의 언약은 그리스도이고, 기도는 언약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비밀로써 주신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구분하라는 뜻입니다.
8) 여하튼 우리는 이 사람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증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위하여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분명한 응답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그리스도를 ‘오직’으로 누리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10차 캠프가 다음 주부터 시작이 되는데, 이런 중요한 응답을 받는 축복의 캠프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