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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도다 (Meaningl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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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6-11 05:14 조회1,914회 댓글0건
일시 : 2018-06-10 본문 : 전(Ecc) 1:1-11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본문

헛되도다 (전도서 1:1-11)

 

오늘도 우린 말씀을 받고 예배를 드린다. 이 예배에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라도 기도와 예배는 할 수 있다. 우리가 살다보면 영, 육간에 어려움을 당할 수 있는데 오늘 모든 것이 치유 되고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이 어려움은 원죄 이후에 어떤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어려움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실제 성경에서 많은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의 눈으로 이 어려움을 보아야 한다. 자녀들의 어려움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는 과정에 불과하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절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 그것을 성취하는 과정 중에 하나가 성도의 고난이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사실 복음 운동의 한 과정이었다. 그 어려움을 통해 요셉은 당대 최고 축복을 누렸다. 이 눈이 뜨이기 바란다. 많이 듣는게 아니라 눈이 열려야 한다. ‘~ 그렇구나!’ 발견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겠다. 그리고 말씀을 예사로 들어서는 안 된다. 읽을 때도 그렇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절대 계획은 계속 성취되었고 흑암 세력이 반드시 무너졌다.

 

다니엘의 사자굴은 상상하기도 싫은 어려움인데 그 후 다니엘을 방해하는 모든 세력이 깨끗하게 정리 되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다니엘 주위에서 다니엘을 방해하던 사람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냥 다니엘을 높여 버리면 여기저기서 말이 많았을텐데 사자 굴에 들어갔다가 살아나왔으니 아무도 말을 못 하는 것이다. 사단도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게 우리의 고난이다. 그래서 축복이라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답을 얻으면 아무도 말을 못 한다. 왕이 화가 나서 다니엘을 방해하던 모든 가족을 쓸어버렸다. 잘 생각해보고 답을 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눈이 안 열리면 기도하라! 우리도 우리의 고난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항상 하나님의 축복의 이유가 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 하는 것! 참 놀랍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자꾸 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간다. 우리는 세상의 사람이 되려고 자꾸 노력하는데 그게 동기이다. 이것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신자는 그렇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응답을 안 하시고 주춤하도록 기다리신다. 하나님이 일을 안 하시고 기다리고만 있어도 우리는 못 기다려서 난리가 난다. 왜 하나님은 우릴 기다리시는가? 이 눈이 열려서 증인 되고 참 평안을 누리라고. 이 눈이 열려서 모든 주변의 어려움을 정복해 버리라고! 그래서 이 고난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이다. 절대로 우릴 골탕 먹이기 위함이 아니다. 절대! 오해를 풀어야 한다. 절대 하나님은 우릴 괴롭히지 않으신다.

 

헛되도다.

전도서를 기록한 솔로몬 왕은 부귀영화라고 하면 따를 자가 없을 정도고 세상에서 많은 복을 누린 사람이다. 이 분이 가진 지혜는 주변의 모든 왕들도 부러워했고 경제적으로도 부강하였다, 경제 축복은 내가 그리스도 누리고 언약 잡고 승리하고 있으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부분이다. 백향목은 나무 중에 가장 좋은 나무인데 이것으로 성전을 지었다. 그 때 예루살렘에서는 백향목이 뽕나무 취급을 받을 정도였단다. 이스라엘에서 나온 게 아니라 레바논에서 가져오는 나무였는데도 그랬다. 이스라엘에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쉬바라는 여왕이 찾아왔다가 나중에 고백했다. 내가 소문을 듣고 왔는데 그 소문은 진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지혜의 반밖에 안 된다. 정말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극찬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입에서 오늘 헛되다는 말이 나왔다. 내가 주욱~ 살아보니 세상의 모든 것이 사실은 헛되다는 것이다.

 

전도서 1:2-10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오늘도 그냥 세상이 흐르고 있는 것이지 새로운 건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모든 것이 헛된 것. 해 아래 일어나는 것 중에 사실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를 속이는 것 뿐 진실 되게 말해서 잠시 좋을 수는 있겠지만 유익된 건 없다는 말이다. 돈이 필요해서 열심히 따라가다가 그 자리에서 영원히 죽어버렸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돈이 유익했던 것인가? 하는 말이다. 그래서 전도자 솔로몬은 전도서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전도서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결론을 말했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이게 우리의 본분이고 그것 말고 답 없다. 하는 이야기이다. 그 분으로부터 성공해야 진짜 성공이고 인생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헛되다고 시작한 전도서의 끝은 이렇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 외에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이 없다는 뜻.. 이게 결론이다. 여기에 답 나면 그 사람은 기적을 보게 되어있다. 대부분 말씀을 들을 때만 답 나고 집에 가면 잊어버린다. 그래서 오늘도 너무나 억울하게 사단에게 당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외형적으로 볼 때 세상이 얼마나 많이 변하고 있는가? 너무 빨리 변해서 못 따라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사실 하나도 변한 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많이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사실 더 악해지고 퇴보하고 있다. 돈은 많아지지만 더 힘들고 더 허무해지고 있다. 그러니 요즘엔 우울증이 더 증가하고 있지 않나? 영적으로 보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해도, 바람도 그때나 지금이나 늘 그모양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바른 눈으로 보라는 것. 오히려 퇴보 하고 악해지고 있다. 처음 원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이후 인간이 변한 것이 무엇인가? 솔로몬은 이 질문을 하고 싶었고 결론은 똑~같다는 것. 원죄 때와 똑같으니까 너희는 말씀을 지켜라! 그래야 인간의 헛된 것을 버릴 수 있다. 세상에 의미 있는 것이 한 가지라도 있는가? 눈을 뜨고 바로 보라는 것이다. 내가 죽고 인간이 다 죽는데 세상에 의미 있는 게 무엇인가? 말씀을 지켜라. 너의 인생의 답은 이것 뿐이야!” 말씀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서 답 내면 기적 일어난다. 그 외에는 의미도 이유도 없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내가 살아본 해 아래는 없다는 게 솔로몬의 결론! 너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라!”

 

우릴 이 저주에서 건지신 분이 그리스도이다. 아무리 해도 안 되고, 허무한 것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눈이 안 열려서 세상에서도 행복하다 말하지 만약 진짜 눈이 열리면 세상은 행복 할 수 없는 곳이다. 제가 원불교를 다녔을 때 설법을 가르치신 분이 있는데 한번 생각에 잡히면 들판에서 해가 질 때가지 그대로 서 있다고 한다. 왜 서있냐고 물으니까 이 일을 어찌할꼬~” 하면서 해가 지도록 서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면 영적 문제이다. 그 분이 고민하는 이유는 인간에게 왜 이런 고난이 오냐는 것이다. 되지도 않는 이런 부분에만 눈이 열려도 세상에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오히려 길거리 홈레스들이 행복하다고 한다. 정신이 나가서 그렇다. 우리도 한~ 반쯤 돌은 것 같다. 여전히 세상에 있어도 행복하다지 않나? 눈이 안 열려서 그렇다. 심지어 들판에서 고민했던 그 분도 행복하지 않은 인생이란 걸 알고 고민하는데 우리는 오히려 답은 알지만 왜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지 이 눈이 잘 안 열리니까 실질적으로 복음이 답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솔로몬에게 이 눈이 열린 것이다. 아무리 해도 인생이 허무해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는데 그 답이 그리스도였단 말이다. 그리스도를 알고 깨닫고 누리면 이 눈이 열리게 된다. 완전히 180도 바뀌어서 당장 인생의 의미가 살아나게 된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너는 말씀을 대언하고 생기를 불어넣으라고 했다. 그 뼈가 살아나서 큰 군대가 되었다. 애굽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언약의 피를 바르라고 하여 피를 발랐다. 그 날 이스라엘과 애굽은 완전히 역전이 된 것이다. 그 전 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였다. 근데 이제는 애굽이 꼼작을 못 하는 것이다. 따라만 가면 다 죽으니까. 그리스도 누리면 이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