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 (The Com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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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7-29 05:59 조회1,450회 댓글0건본문
본래 인간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원죄를 지나면서 인간은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되었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 세상입니다. 문명은 많이 발전을 했지만 영적으로, 정신적으로는 더 악해지고 더 심각해졌습니다. 그리스도를 언약으로 잡는다는 것은 이 모든 잊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답이 없어 방황하고 있습니다. 원죄 이후로 눈이 어두워진 것이 이유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만 대부분 그 눈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직 확인이 덜 된 상태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언약으로 잡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누리면 이 눈이 열리고, 명확해 집니다. 그 출발은 말씀을 써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더 깊이 마음에 각인하고, 누리면 사람이 바뀌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응답이 지속되고, 되어지는 응답이 옵니다. 기도 없이 응답 받는 인생이 되도록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누리고 고백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인생의 답입니다.
사명
오늘 말씀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 장로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가이오 장로는 롬16:23에 사도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모든 전도자들을 돌보는 식주인 역할을 한 사람 이었습니다. 이 가이오를 너무 사랑한 사도 요한이 2절에 가이오 장로를 위해 기도한 내용은 아주 유명한 성경구절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가이오 장로는 소문이 날 정도로 진리의 사람이었고, 유럽과 아시아의 모든 전도자를 도운 당대 최고의 식주인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 그 전도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여비를 주어서 다니면서 먹고, 잠자는 일을 도와 준 것입니다. 이것이 당시 아시아와 유럽의 모든 교회에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이런 사명 가진 중직자가 하나님 나라에는 많이 필요합니다. 사명은 참 귀한 것입니다. 믿는 자는 그 믿음을 증거하는 사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 생명을 전달하는 사명의 인생은 참으로 귀하고 역동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힘을 주시고, 치유도 일어나게 하십니다. 가이오는 참 행복했을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행복하고 뿌듯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사명의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바로 알아야
이런 전도자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우선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그 복음을 개인적으로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역사합니다.
복음은 창3장의 원죄 문제로부터 출발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원죄 사건을 인간이 그 열매를 먹은 행위 수준에서 이해를 끝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눈으로는 원죄 사건의 근본을 보지는 못합니다. 원죄 사건의 근본은 사탄입니다. 사람의 행위를 넘어 한 걸음 더 갔어야 했는데, 그 한 걸음이 안되어서 복음의 핵심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라는 소리도 듣고, 인본주의라는 소리도 듣는 것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바로 옆에서 한 걸음을 남겨두고 멈추어 서고 말은 것입니다. 원죄의 본질은 사탄이기 때문에 메시지는 항상 그리스도와 사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영적 메시지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원죄의 본질이 사탄이라는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 원죄가 일어난 뒤 즉시로 주신 말씀, 창세기3:15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위를 잘못한 사람을 죽이겠다고 하시지 않고, 사탄의 머리를 깨버리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사탄이 원인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이런 눈을 가져야 하고, 당연히 이런 눈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사탄이고, 그러므로 영적문제이고, 경제도 영적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하나님은 죄는 한 가지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인이 인간의 행위가 아니고 사탄이라는 이 영적 메시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원인이 사탄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영원히 답이 없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답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답이 그리스도입니다.
이 눈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행위를 강조하고, 선을 강조하고, 은혜를 강조하고, 기도를 강조하고, 열심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대단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당연하게 깨달을 것에 불과한데 그것이 안되기 때문에 영원히 그 곳에 도달이 안되는 것입니다. 행위를 강조하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나 하나님과 그 근본 이유에 있어서 눈이 맞추어져 있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로 옆에서 영원토록 안타까운 헛발질을 하고 있습니다. 누림과 권세와 정복과 같은 것은 너무나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태를 가지고는 모든 문제 해결과 같은 것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완전정복, 완전응답, 완전인생, 완전기도 같은 것들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끝까지 가는 전쟁, 근본이 해결되는 전쟁, 모든 것의 그 근원이 역전되는 역사 등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는 근본 그 자리에 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 정복 같은 단어는 상상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가장 먼저 복음의 핵심 포인트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눈이 실제적으로 열려야 합니다. 정말로 사탄이 원인이고, 모든 것은 영적문제이며, 그리스도 외에는 답이 없다는 ‘오직’의 사실에 눈이 정말로 열려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를 지속으로 누리면 응답이 연속되게 되어 있습니다. 응답이 연속이 될 때 당연히 오는 결과가 눈이 열리고, 인생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나를 정복하고 내가 사는 지역에 내가 영적 사령관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그리스도를 언약으로 잡고, 우리 모두 가이오 장로와 같은 인생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