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 주일 강단 메시지

본문 바로가기
HOME > 메시지 > 주일 강단 메시지
주일강단메시지

용서 (Forgiveness )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9-22 12:45 조회308회 댓글0건
일시 : 2024-09-21 본문 : 고후(2Cor.) 2:1-11 설교자 : 장현태 담임목사 (Rev. Hyun Tae Jang)

본문

영상시청 (아래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Watch the video (click the link below)
https://youtu.be/2OALD8eIQC4    

 

 

용 서 고후2:1-11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으로 하십니다. 아무 재료도 없이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분입니다. 1달란트 받은 자가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한 마디로 아무 재료 없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1달란트 받은 자도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아무것도 필요 하지 않으시고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으십니다. 그냥 당신의 말씀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말씀을 생명으로 듣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1. 용서

1)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에서 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과 그들의 부족한 것에 대한 책망등을 기록했습니다. 교회 안에 파당도 있었고 심지어는 이방인도 하지 않는 음행도 있어 너희가 어떻게 그를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고 질타도 했습니다

2) 그 뿐 아니라 결혼 문제 방언 문제 제사에서 나온 고기를 먹는 문제 등등 많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고 그것이 그들에게 때로는 상처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상처를 위로하기 위하여 쓰여진 편지가 오늘 본문입니다.

3) 그래서 4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썼노니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게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4) 특별히 7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금심에 잠길까 두려워 하노라단수로 표현되어 있을 것을 보면 아마 음행한 자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8절에는 그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라고 했고 9절에서는 이 말씀에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5)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이해하고 품고 함께 가고 위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없는 용서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 용서가 없었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도 저주의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간음 현장에서 잡혀 온 여자는 극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용서 때문이고 그 용서를 가지신 주님의 권세 때문이었습니다.

6) 그 권세가 없었다면 돌을 들고 분노해 있던 그 남자들이 어떻게 하나 둘 씩 사라졌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권세 있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사단이 절대로 손대지 못하는 완전한 자유가 있는 용서입니다.

7) 이 놀라운 용서를 받은 우리도 사람을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용서하면 자신이 먼저 삽니다. 내가 먼저 용서하면 내가 먼저 살고 그 사람도 살립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복을 받을 것입니다.

8) 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이 용서를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나의 용서를 받은 그 사람도 그리스도을 받게 될 것입니다.

9) 그리고 11절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그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른 것을 말하여도 용서하지 않고 대립을 하고 있으면 결국은 사단의 목적만 이룰 뿐입니다.

10)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사탄이 원하는 것을 도와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가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죽는 자가 살고 승리하고 정복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몸소 보여 주신 주님의 방법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용서하고 이해하고 함께 가고 위로하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11) 물론 마음으로 용서는 하지만 함께 가지는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길이 바르지 않으면 그 길을 따라 갈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그 때에도 마음에 용서도 하고 이해도 하고 위하여 기도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길이 하나님과 말씀의 길에 맞지 않으면 그 길을 따라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가 쓰는 단어가 초월입니다.

12) 때로는 그냥 두고 우리는 가는 길을 가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 고치려고 평생을 소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하나님이 하실 일을 내가 가야 할 길을 제쳐 두고 그 사람과 평생을 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마음에 품고 나는 하나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도이고 더 빠른 길일 것입니다.

13) 너무나 다양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설명을 할 수는 없습니다. 여하튼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함께 가기를 기도하고 사도 바울처럼 사람을 살리는 우리가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육신적 조건을 따지면 하나님 앞에 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살려 놓으면 능히 설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제자

1) 고후2;12-13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2) 보통의 전도자들이면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는 말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는 문이 열리면 그것에 감사하고, 그 사역에 열중합니다.

3)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작별하고 디도를 만나기 위하여 마게도니아로 갔다고 합니다. 디도는 디모데와 버금가는 아주 중요한 바울의 핵심 제자로서 로마서 등에 기록된 많은 사람들이 중직자 제자라면 디모데와 디도는 지금의 교역자 같은 제자 입니다. 아마 디도에게 앞으로 목사로 사역할 강력한 어떤 것이 보였던 모양입니다.

4) 문이 열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인데도 바울의 마음에는 디도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근심이었습니다. 물론 문이 열린 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을 것입니다.

5) 제자의 중요성에 대한 눈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그가 제자이면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 보다 그 한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사상이 바울의 전도 사상이었습니다. 우리도 이 눈이 있어야 합니다.

6) 전도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전도 방법에 우리의 눈이 맞아야 하나님이 당신의 전도를 우리가 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원리가 이해되고 그것이 내 안에 언약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깊이 각인이 되어서 체질이 되고 망대와 같은 사상이 되어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의 전도를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7) 물론 하나님의 전도를 제자 한 단어로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이런 자세는 우리가 한 번은 생각해 보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제자는 하나님의 전도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단어 입니다.

8) 이 눈이 열려서 성경적 전도가 일어나고 조직을 가진 정복하는 전도자들이 다 되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제자는 우리가 그 지역을 떠나도 그 곳에서 전도 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제자입니다.

9) 만일 연결된 사람이 목사라면 우리가 그 지역에 가지 않고 메시지만 계속 전달해 주어도 교회가 부흥되고 거기에 제자가 일어나고 복음의 영역이 계속 넓어지는 그런 제자 목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도자를 찾으십니다.